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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이다!” 시원하게 외치는 개성만점 여성버디물, '글리치'

전여빈-나나와 노덕 감독이 뿜어내는 환상의 케미스트리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작품이 가진 개성으로 치면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중에서 원톱에 들 만한 드라마가 찾아왔다. 7일 공개된 10부작 드라마 ‘글리치’는 외계인이라는 소재부터 장르, 연출, 대사, 배우, 캐릭터, 촬영, 음악 등 평범한 구석이 없다. 바꿔 말하면 드라마를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톡톡 튀면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신선한 재미를 만든다. 

주인공 홍지효(전여빈)에겐 남모르는 문제가 있다. 낙하산이긴 하지만 건축사무소에 근무하고, 능력 있는 새엄마에, 시집갈 남자친구까지 남들 눈엔 쉬운 인생 같다. 지효 자신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중학교 2학년 때 UFO에 빠져들었던 이후부터 외계인이 눈에 보인다는 거다. 고민 끝에 남자친구 시국(이동휘)과 헤어진 지효는 그가 갑자기 사라진 정황과 UFO가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UFO 갤러리 정모를 찾아갔다가 유튜버가 된 중학교 동창 보라(나나)와 재회한다.  

‘글리치’는 빠른 속도전 대신에 밀도 높은 구성을 취해 회차마다 촘촘한 태피스트리를 들여다보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지효가 보라와 UFO 동호회 멤버들과 함께 곧바로 시국을 찾아 나설  거라는 예상을 깨고, 홀로 분투하는 지효의 상황을 두루 보여주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캐릭터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효가 묻어두고 싶어 했던 과거를 끌어내는 인물이자 시국의 실종 사건을 종교 단체로 확장하는 보라, 지효에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경찰 병조(류경수), 지효를 걱정하는 아빠(전배수) 등 주요 캐릭터들의 성격을 확고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웃음을 유발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지효와 보라가 합심해 시국의 실종사건을 파헤치면서 드라마는 본격적인 미스터리 추적극으로 진입한다. 저돌적인 성격에 방송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불사하는 보라와 소심한 듯하면서도 친구를 위해서라면 행동파로 돌변하는 지효 콤비는 함께, 때론 각개전투를 벌이며 정체에 근접해 나간다. 스타일도 성격도 상반된 두 인물이 과거의 앙금을 가진 채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과거 장면과 교차해 보여주면서 여성 버디물의 성격도 강해진다. 

첫 시리즈 연출을 맡은 노덕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개성 있는 연출 실력을 ‘글리치’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랜 연인 사이인 지효와 시국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은 연인 관계를 현실적으로 묘사한 데뷔작 ‘연애의 온도’(2013)를 떠올리게 하고, 유튜브와 휴대폰 화면, VR 등을 활용하면서 코미디와 스릴러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출은 미디어 특종과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특종: 량첸살인기’(2015)과 맞닿는다. SF와 추적극을 다뤘다는 점에선 미래를 예언하는 운세 프로그램의 실체를 밝히는 시네마틱 드라마 ‘만신’(2020)과 흡사하다. 

미스터리, SF, 스릴러 등 복합장르를 표방하는 ‘글리치’를 접합하는 건 코미디다. 캐릭터마다 지닌 웃음 보유량이 상당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2020)으로 단숨에 스타 작가로 떠오른 진한새 작가는 청소년들의 성매매 범죄라는 무거운 소재의 전작과 다르게 외계인과 사이비 종교라는 소재를 엉뚱 발랄한 코미디로 풀어낸다. 대사에 실린 코미디의 중량감과 적절한 상황극이 어우러져 웃음 타율이 높다. 극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의 배치, 조연 캐릭터를 골고루 부각해 연쇄적인 재미를 끌어내는 실력도 인정할 만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글리치’가 외계인과 사이비 종교를 보여주는 방식은 익숙한 편이다. 외계인의 비주얼이나 사이비 종교의 형태는 지금껏 영화와 드라마에서 봐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대신에 외계인의 차림새, 외계인이 등장하는 순간이나 표식, 사이비 종교의 시작점을 밝히는 대목으로 긴장감을 만든다. 한국 최초의 외계인 접촉자, 서울 UFO 격추 미수사건이라는 설정도 한국 SF 드라마의 지형에 무리 없이 녹아든다. 

주연배우 전여빈과 나나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글리치’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전여빈과 나나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며 차후 시리즈를 기대할 만한 유쾌한 콤비 플레이를 보여 준다. 두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글리치’는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등장만으로 웃음을 기대하게 만들면서 미스터리함까지 보여준 이동휘, 지금까지 쌓아온 탄탄한 연기력과 코미디 연기로 이번에도 맡은 역할을 거뜬히 해낸 류경수는 또 한 번 개성파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UFO 커뮤니티 회원으로 등장하는 태원석, 박원석, 이민구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고, ‘인간수업’에 출연했던 백주희, 정다빈이 사이비 교회 신자들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여성 주연 드라마이고 복합장르라는 점에서 ‘글리치’는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2020)과 비교된다. 차이점이라면 원작을 각색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로 승부한다는 점이다. 연대하는 여성들을 ‘미친X들’로 살짝 비틀어 독특한 여성 히어로 콤비 드라마를 선보이는 ‘글리치’는 ‘오타쿠적’인 감성으로 시청자들과 교신을 시도한다. 진실과 허구, 믿음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내 맘이다!”를 외치며 제 갈 길을 가는 이 드라마의 패기가 마음에 든다. ‘여러분은 외계인의 존재를 믿으십니까?’라는 밑밥을 던지면서 내 안에 남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구석을 살살 긁어주는 이 드라마에 빠져든다면 10부작의 여정 동안 어디까지 가는지 가늠할 수 없는 콘텐츠의 무한 범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일단 직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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